1998.01.01 『월간조선』 <별책부록/2001년의 한국 59인의 초상>


한국학과뉴미디어의 접목을 위한 거대한 실험


김    현

서울시스템(주) 상무이사


  대학에서 한국철학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수료한 후 우리나라의 고전 자료를 전산화하겠다는 생각으로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 들어간 것이 1985년. 그 후 십여 년 동안 역사 연구 사료나, 현대 문헌 자료와 같은 학술 자료를 전산화하는 사업에 종사하는 한편, 대학에서는 한국 사상을 강의하면서 전근대 사회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 왔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흔히 듣는 이야기 중 하나는 “당신 같은 사람이 한 분야에 매진했으면 좀 더 나은 성취를 이루었을 것 아니냐?”는 말이다. 하지만 남의 눈에는 두 가지로 보이는 그것들이 나에게는 사실 한 가지 일이었다. 한국의 전통사회를 연구하면서 그 가운데 무엇이 전승의 가치를 지니는 것인지 고민하는 것과 정보 과학의 기술 발전에 보조를 맞춰가며 고전의 뉴미디어화를 위한 방법을 개발하는 것. 이 두 가지가 함께 추구되었기 때문에 나의 일에는 항상 명확한 기준과 목적이 있었다. 지난 십여 년 간 그 두 가지 일을 함께 추구해 온 데서 얻은 소득은 무엇인가? 나 자신이 얻은 소득을 말하기에 앞서 “우리 사회가 비로소 한 사람의 인문학 분야의 전산 전문가를 갖게 되었다.”고 말하면 너무 과장된 소리일까?

  역사책 같은 것을 컴퓨터에 집어넣는 데, 그토록 전문적인 지식과 오랜 기간의 훈련이 필요한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한 일들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사고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인문학자들은 자신들이 자료 정리의 구상만 마련하여 전산 기술자들에게 그 뒤처리를 지시하면 나머지 과정은 미리 정해진 기계적 프로세스에 따라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재미있는 것은 그 문제에 대해  컴퓨터 전문가들은 정반대의 구상을 한다는 것이다. 플렛포옴(전산 시스템을 운영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을 설계하는 능력을 갖춘 자신들이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인문학 전공자들은 보조 인력으로서 컨텐트(데이터베이스의 내용물)를 가공하는 단순 업무를 맡으면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서로가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고, 그래서 합의점에 이르기도 쉬울 것 같지만 막상 일을 진행하려고 하면 벽두부터 의사소통의 벽에 부딪히는 것이 다반사이다. 학제간 연구 사업이 쉽지 않은 이유는 상대방 분야를 별 것 아닌 것으로 평가절하하는 데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인문학 전공자로서 컴퓨터 시스템 개발에 관한 본격적인 지식과 경험을 쌓기 시작한 후로부터 만 10년이 지난 1995년 10월, 내가 소속된 서울시스템주식회사의 한국학데이터베이스 연구소에서는 16만 페이지 분량의 방대한 데이터를 담은 국역 조선왕조실록 데이터베이스를  CD-ROM 판으로 간행하였다. 조선왕조실록 데이터베이스를 개발할 때 참여한 이 연구소의 개발 조직은 인문학 전공자로 구성된 편집진과 프로그래머 그룹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프로그래머들은 다시 데이터 편집기를 개발하는 에디터 개발 팀, 자료 인덱싱 기법을 연구하는 검색 엔진 개발 팀, 사용자가 다각적으로 자료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응용 프로그램 개발 팀, 실록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한자 서체가 컴퓨터 상에서 운영될 수 있도록 하는 서체 프로그램 개발 팀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편집진 역시 그 안에는 조선사를 전공으로 하는 역사 연구자 그룹이 있고, 한문 해석에 능통한 한학자 그룹이 있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자신이 맡고 있는 분야가 소중하다. 자기 분야의 일에 보다 많은 시간과 인력이 투여되어지기를 바라고, 다른 분야의 일들이 자기 업무 중심으로 맞춰지기를 요구한다. 사실상 개발 업무가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분야별 업무들이 사소한 것부터 굵직한 것까지 끊임없이 상충하는 것을 경험했다. 예컨대 데이터베이스 구축 도중 초기에 설계된 프로그램 구조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예외적인 형태의 원시 자료를 만나게 된 경우 자료의 원형을 중요시하여 프로그램을 바꿀 것이냐 프로그램에 맞춰 자료의 구조를 다른 형태로 바꿔서 처리할 것이냐를 가지고 편집진과 프로그래머의 의견이 맞부딪치게 된다. 이러한 문제들은 모두 개발진들을 참여시킨 회의에서 최종 방침이 결정된다. 그러나 이 회의라고 하는 것은 결코 민주적인 회의가 아니다. 그들은 발견된 문제를 제기할 뿐 어느 누구도 답안을 제시하지 못한다. 모든 문제는 상이한 분야에서 발생한 원인들이 서로 얽혀 있는데 상대방의 일에 대해서는 무엇을 존중하고, 무엇을 버리도록 요구할 지 알지를 못하기 때문이다. 정보화 하고자 하는 내용과 정보화에 응용할 기술의 모든 요소에 대해 정통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프로젝트 책임자만이 상충하는 요소들의 경중을 가름하여 해결 방안을 지시할 수 있다.

  국역 조선왕조실록 CD-ROM은 초판을 간행한 지 2년만인 지난 11월 개정판을 간행하였다. 이 CD-ROM의 저본인 국역 실록은 20여 년에 걸쳐 각 왕대별로 부분 부분 이루어졌는데, 그 동안 개정판 간행은커녕 전질 통합 간행조차 이루어지지 못한 데 비해, CD-ROM은 2년만에 개정판이 나왔다고 하는 사실은 뉴미디어의 효용성을 잘 입증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이 개정판에는 32만여 개의 개별 기사를 161개 표목에 의해 상세히 나눈 분류 주제 정보가 포함되었고, 개별 기사의 한문 원전 소재가 추기되었다. 개별 기사에 일일이 분류 주제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국역문과 한문원문을 정밀하게 대조하여 번역이 누락되었던 부분, 기사 분리가 잘못되었던 부분들을 찾아내어 수정한 결과도 반영되었다. 겉보기에는 큰 변화가 없는 것이고, 개정판을 낸다고 해서 특별히 이 제품에 대한 수요가 증대되는 것도 아닌데, 2년 동안 개발 팀을 지속적으로 운영하면서 이 일을 추진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조선왕조실록이 우리 민족사에 갖는 의미가 중요한 만큼 그것을 뉴미디어 시대의 저작물로 계승하는 노력도 한 순간의 이벤트성 사업에 그쳐서는 안되며, 끊임없이 정확성과 효용성을 높여 가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조선왕조실록 DB의 기능을 제고하기 위해 우리가 더 해야 할 일들은 앞으로도 산적해 있다. 현재는 역주 형태로 되어 있는 역사 용어 해설 부분을 전면 보완하여 용어사전 형태로 전환하는 일, 그러한 역사 용어들의 상호 유관성을 따져 씨소러스를 구축하는 일은 그 가운데 하나이다. 이러한 씨소러스의 구축은 조선시대의 관직이나 제도 등 역사 용어에 익숙치 않은 비역사전공자들에게 실록 데이터베이스 이용의 문을 넓혀 줄 것이다.

  현재 우리가 만들고 있는 한국학 데이터베이스의 중의 하나는 “고종․순종실록 데이터베이스”이다. 실록은 왕이 돌아간 후 편찬되기 마련인데, 이 두 왕의 실록은 일제 강점기에 편찬되었기 때문에 남한의 역사학계에서는 이것을 조선왕조실록 속에 포함시키지 않았고, 그래서 정부가 주도한 실록 국역 사업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번역은 제외되었었다. 그러나 편찬자의 정통성 문제를 떠나 이 기록 또한 우리의 엄연한 역사기록이며, 우리나라 역사 연구자의 반수가 넘는 근현대사 전공자들이나 사회학, 정치학 등 사회과학 분야의 연구자들은 이 사료의 효용성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데이터베이스 간행을 결정한 것이다. 한문 원문과 국역문을 함께 검색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가 98년 상반기 중에 간행될 계획이다.

  국사편찬위원회와 서울시스템이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는 “한문 원전 조선왕조실록”의 간행은 국역 실록의 간행보다도 훨씬 버거운 일이다. 개발 사업에 착수한지 5년이 지났지만 앞으로도 2년이 더 지나야 간행될 이 사업의 진행 과정을 보면서 과연 나의 판단이 옳았는가 하는 회의를 할 때도 없지 않다. 이른바 ‘二十五史 標點 方式’이라고 하는, 漢文 문장의 구조를 상세하게 분석하는 구두 체계를 데이터 편집에 적용하기로 결정한 것 때문이다. 한문 문장을 읽는 데 그와 같은 구조적 이해의 엄밀성을 요구하지 않았던 우리 학계의 풍토에 비춰 볼 때 무리한 일임에 분명했지만, 고전 자료 전산화의 모범을 보인다는 취지에서 욕심을 낸 일이 데이터베이스 간행 시기를 상당 기간 연장시키고 말았다. 다행히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원문 표점의 책임을 맡아 주어 현재는 간행 준비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지만, 이로 인해 다른 자료들을 전산화할 기회를 잃은 것도 사실이다. 한문 원전 조선왕조실록은 국역 실록에 비할 때 학술 연구에만 소용된다는 제한도 있지만, 텍스트가 동아시아 문화권의 공용어인 한문이기 때문에 중국 일본의 학자는 물론 구미 지역의 동양학 연구자들까지 폭넓게 동아시아사로서의 한국사 연구에 손댈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학술적인 의의는 자못 크다고 할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 관계 프로젝트들은 국역 실록 간행시에 구축된 기술적 토대 위에서 실무 책임자들 선에서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지난 8월부터 미국 보스턴에서 하버드대학 교환교수 자격으로 체재하며 또 다른 프로젝트, 이른 바 “와그너-송 문과방목”이라고 하는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 신상 자료를 간행하는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조선시대 5백년은 “문과”라고 불린 이 시험에 합격한 문관 관료들과 그 합격자를 낸 문중에 의해 지배되어 왔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와그너와 송준호 두 사람은 이 자료를 붙들고 지난 30년을 씨름해 왔다. 14,600명에 불과한 과거 급제자의 개인 기록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가계, 혼인, 거주지 등을 샅샅이 조사하여 조선시대 지배 계급의 실체를 밝히려 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 일에 대해 컴퓨터 버튼만 누르면 어느 집안이 양반이고 어느 집안이 상놈인지 알 수 있게 하려는 일이냐고 묻기도 한다. 가능한 일이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설사 어느 누가 이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자기 집안 선조 수십 명이 과거에 급제했고 비슷한 수준의 다른 문벌들과 첩첩이 혼인을 맺은 양반 중의 양반임을 입증한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자랑스러운 일만은 아니다. 그들은 우리 사회에 예의 염치의 도덕 기풍을 세운 그 시대 사회의 주역임과 동시에, 그 사회를 최근세까지도 신분 질서의 굴레 속에 꽁꽁 묶어 두어 근대국가로의 발전을 가로막았던 장본인들이다. 조선시대 지배 계층에 대한 자료는 들여다보면 볼수록 그 신분적 폐쇄성에 놀라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조선 양반에 대한 그 연구를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그들이 수십만 장의 카드에 채록한 과거 우리 사회 모습의 편린들이 자칫 상자 속에 처박혀 하버드대학의 자료 보관소로 옮겨지는 것을 막고, 그것이 후학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조선시대 사회사 연구에 쓰여질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들의 눈에 긍정적으로 보이든 부정적으로 보이든 객관적으로 드러난 역사적 사실들은 부인할 수 없는 우리 역사의 한 부분임에 틀림이 없다.  그 역사의 실상을 공개된 현장에서 다수의 비판적인 안목으로 명확히 짚어야지만 오늘날까지도 우리 문화의 이면에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인습의 굴레를 벗길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반만년 문화민족의 자손임을 자랑하지만 그 전통 문화의 실상에 대해서는 너무나 어두운 것이 사실이다. 어느 한 분야에서 수준 높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 개인의 연구 영역에만 머물고 전공 분야가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공유되지 못한다. 오늘날 한국의 역사학, 한국철학, 고전문학, 사회학 등 한국학의 제분야가 얼마만큼 공통된 시각으로 한국의 전통 사회를 해석하는지를 보면 알 것이다. 학문 세계에서 그렇다면 일반인들의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그 가운데, 조선왕조실록이 CD-ROM이 간행된 후, 출판계에서는 ‘조선사 신드롬’이라고 할 정도로 조선시대 역사를 소재로 한 책들이 줄줄이 간행되고, TV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는 것은 나로서는 지극히 반가운 일이다. 데이터베이스가 제공하는 검색 기능은 실록 읽기에 수십 년을 바치지 않은 사람도 재미있는 창작의 소재를 자유롭게 뽑아내게 하고 있으며, 그것을 가지고 우리 국민 다수가 쉽게 접할 수 있는 교양물을 만들어 낼 수 있게 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 고전 자료의 전산화라고 하면, 그것이 단지 고전 연구를 위한 자료 찾기의 효율성을 증진시키기 위한 것 정도로만 이해하기가 쉽다. 십 년 전쯤 이러한 일들이 시작될 때만 해도 그것의 목적은 그러한 데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상황이 다르다. 뉴미디어에 의해 올드 미디어가 급속히 대체되어 가고 있고, 사회의 많은 분야의 일들이 전적으로 뉴미디어에 의존해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사회 구조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 이 같은 미디어의 혁명은 기성 세대들이 간직해 온 전통적인 지식과 가치관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신세대들은 책을 읽지 않는고 한다. 하지만 그들이 인터넷에 열린 사이버의 세계에 탐닉하는 시간은 점점 늘어만 간다. 그들은 정보 통신의 세계에서 나름대로 그들에게 유용한 지식과 정보를 입수하고 그로 인해 지적으로 성장해 가며, 결국은 그 바탕 위에서 다음 세대의 사회를 이끌어 가는 위치에 이르게 된다. 기성 세대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사이버 세계의 학습 공간에 침투해 들어가지 않는 한 그 분야의 지식은 신세대의 지적 영역에서 소외될 것이 자명하다. 전통 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 지적 유산을 뉴미디어에 접목시키는 일에 무관심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는 내가 받은 교육을 통해 전통 시대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을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 지식은 현대 한국 사회의 다양하면서도 독특한 면모들이 유구한 과거의 삶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발견하게 한다.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우리 사회에 엄존하는 현상들을 그것의 문화적 뿌리를 파헤쳐 올바르게 진단하는 것은 거기에서 파생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꼭 필요한 과정이다. 그러한 노력이 정보 미디어의 혁명을 거친 다음 세대들에게도 이어질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내 스스로 나의 일에 부여하는 의미이다.